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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이야기

[후원이야기]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온 노무현시민센터 후원 이야기

“사람들을 설득하며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추도식을 계속 하려는 이유는 추도식을 통해서 지치고 힘든 순간마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의지를 더 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노무현 대통령을 대면하고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했던 나의 약속들, 그 목적과 방향을 재점검하고 충전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라는 거였죠. 그 말과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와 한국은 16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햇빛이 비칠 때 달빛이 가득한 아주 먼 곳이죠. 그렇지만 매년 5월이면 어김없이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이 진행됩니다. 같은 마음의 5월을 보내오길 10년, 올해는 그 마음이 노무현시민센터 건립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현이라고 합니다. 92년 2월 6일, 20대 후반, 청바지에 팬티, 양말 몇 개 딱 넣고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에 왔는데 어느 새 29년을 맞았네요.”

김종현님 단독사진_5.png

※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서 치과기공사로 일하시는 김종현님

 

김종현님께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88년도 오공 청문회가 첫 인상입니다.


“20대 젊은 시절, 한참 정신없이 돈 벌기에만 집중하던 때인데 정말 낯설고 인상 깊은 장면을 TV에서 봤죠. 분명히 화면 속 모습인데 바로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듯 그런 기분이었어요. 얼굴 표정에서 사람에 대한 진정성, 열정 같은 것이 막 뿜어져 나왔죠.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때의 노무현이.”


그 얼굴을 다시 만난 건 멀리 미국 땅에서였습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 건 정말 어려웠어요. 어떻게든 자본을 모아야 하니 노동 강도도 높았고 낯선 언어들 틈에서 매일 매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2002년 월드컵 때문에 틀었던 TV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온 그 얼굴을 다시 만났어요. 14년 만에 본 거였는데 88년도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소위 거물이라 하는 분에게도 불의에 대하여는 당당하게 정면돌파하던 변함없는 그 모습이 다시금 충격을 주더라고요. 그 때가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와 도전이 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나와 가족들과 돈만 좇으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많았어요. 개표하던 날 한국에 국제전화를 쉬지 않고 걸어가며 그날 밤을 꼴딱 샜어요. 실시간으로 당선을 전해 듣던 그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그날 이후 김종현님이 읽고 공부한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이라는 단어가 가장 짙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저는 비교적 보수적인 환경에서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을 알아가고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냥 ‘사람’이에요. ‘사람냄새’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분이시죠. 제 닉네임도 그를 따라 ‘human(휴먼)’입니다. 그분의 삶의 선택, 방향들은 초점이 정확히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위한 진정한 진보’ 저는 그분의 가치관이 딱 그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TV를 통해서만 만났던 그 사람, 그렇지만 1주기 추도식부터 10주기까지 2009년을 떠올리면 슬프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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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 와이프의 목소리가 잊히질 않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그 얘기를 듣고 3일 낮 3일 밤을 사무실 문도 닫은 채 울기만 했어요. 다행히 한인회에서 추도장소를 마련해주어 인사라도 드릴 수 있었죠. 그 이듬해 1주기 추도식은 목사님과 교회에서 5월마다 해오던 작은 음악회를 노무현 대통령 추모 음악회로 해볼까 하는 이야기가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한인 사회가 보수적이었던 때라 추도식을 반대하는 교인들이 많아 교회에서 진행하지는 못했고 겨우 겨우 공간을 마련해가며 고생스럽게 준비했어요. 그래도 함께 준비해준 모두가 딱 맞춘 한 팀처럼 각자가 능력들이 있어서 뚝딱뚝딱 잘 해냈죠. 포스터 제작부터 실내장식, 영상제작까지 다 기술자분들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한국 고전무용을 전공하신 분이 계셔서 살풀이춤도 준비했어요. 그분들과의 수고가 지금까지 이어진 활동의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추도식을 준비해온 모임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명칭도, 사람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모인 ‘노짱러버스’가 추도식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요. 노무현시민센터 건립 후원도 ‘노짱러버스’에서 마음을 모아 보내주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알릴레오’를 많이 듣거든요. 얼른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는 열혈 팬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노무현시민센터를 자세히는 몰라도 알고는 있죠. 다들 마음이 있었기에 선착순 1,000불 모으기를 해서 후원을 하게 되었어요. 선착순이다보니 미처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로 금방 마음이 모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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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님이 속한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한인 모임은 다양한 시민활동을 해왔습니다. 환경모임부터 독서모임, 진보주의 미래세대 양성을 위한 학교까지도 준비했었죠. 그런 김종현님께 노무현시민센터에 대하여 여쭤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고 활동하는 모임들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 고민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노무현 정신을 계속 배우고 이어가면 좋겠는데 당장 저희들의 자녀만 하더라도 영어권에 있으니 한글로 된 자료로는 그분의 가치를 이해하기에 한계가 크더라고요. 아마도 대통령님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해외교포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노무현을 알리는 자료를 쉽게 그리고 다양한 언어로 개발하고 확산하는 일이 노무현재단을 중심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노무현시민센터라면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보통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공간이라 하면 엄숙하고 조용하고 시종일관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처럼 느끼는데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가도 자연스러울 정도의 편안한 공간이길 바랍니다. 대통령님이 정말 소탈한 분이셨잖아요. 그분의 그 사람냄새를 닮은 공간이면 좋겠어요. ‘노무현시민센터에 간다.’라고 하면 시민 누구나 편안하게 집에서처럼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는 거죠. 그런 분위기로 운영이 된다면 시민들이 조금 더 쉽게 노무현을 만나고 저처럼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다듬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강물처럼’이라는 대통령의 말이 그간에 거쳐 간 모임의 변화 속에서도 추도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김종현님. 사람이 모이는 것이기에 굽이치고 틀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결국엔 바다로 향하는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노무현재단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큰 꿈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갑니다. 조금 흔들리고 부딪히는 일이 있을지라도 함께 나아가는 그 방향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여정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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