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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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은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을 떠나 마지막 여행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최영은 운구차를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큰 슬픔에 힘겹고 고통스러웠지만 대통령의 마지막 여행만큼은 자신이 꼭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영은 어쩌면 노무현과의 인연이 되려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1988년, 대입에 실패하고 취업해있던 그에게 친형님이 노무현 의원의 운전기사를 제안했습니다. 며칠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대답한 최영은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며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노무현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최영은 과묵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집안식구를 포함해서 그 어떤 친구들에게도 노무현 의원을 모시는 중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향한 존경이 그 바탕이었고 직분에 충실하겠다는 항심이 그 동력이었습니다.
과묵의 이면에는 남다른 열정과 분노도 있었습니다. 노무현이 초선의원이던 시절, 일련의 대학생이 광주학살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국회의원회관 민정당 의원실을 점거해 농성했습니다. 그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출동하자 최영은 그들을 향해 소화기를 분사했습니다. 언론에도 보도된 이 장면은 최영이 사람사는 세상으로 가는 노무현의 여정에 둘도 없는 동료였음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그런 최영을 노무현은 아끼고 존중했습니다. ‘영 씨’, 노무현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언제나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존중이 있었습니다. 최영이 운전하는 차에 타면 노무현은 집에 온 것같은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지방을 다닐 때는 한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최영은 노무현에게 운전기사를 넘어 비서를 넘어 동반자였습니다.
최영은 노무현의 모든 순간에 동행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경호 교육을 받고 경호실 소속이 되어 대한민국 1호차를 운전했습니다.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떠나면 대형버스를 운전하며 구비구비 강원도의 산길을 누볐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상경하는 우울한 날, 그 버스의 운전대에도 최영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쁜 순간에도 슬픈 순간에도 힘겨운 고비를 넘던 순간에도 최영은 기꺼이 대통령 노무현의 발이 되었습니다. 아니 발을 넘어서 때로는 기쁨이 됐고 때로는 위로가 됐습니다.
봉하마을에서의 최영은 노무현과 함께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했고 사저 안팎의 궂은 일을 전담하는 일꾼 중의 일꾼이었습니다. 지금의 봉하마을이 있기까지 최영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이 없었고 최영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공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대통령을 떠나보낸 후 최영은 권양숙 여사를 모시는 일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충심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원히 지칠 것같지 않던 그 충심과 열정, 그리고 타고난 부지런함도 끝내 병마를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외로운 노무현 대통령의 말벗이 되기 위해 그 스스로 이 길을 서두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영, 그의 영혼이 이제 평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최영의 영원한 동행에 경의를 표합니다.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